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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도의 역사

1차 한국사 탐구 활동 보고서

제목 : 독도는 우리 땅에 대한 역사적 증거와 교육프로그램
10129정태석
1. 주제 선정 이유 : 우리나라 사람들은 독도가 우리 땅이라곤 하지만 실제로 일본인과 직접 토론할 경우에는 제대로 아는 지식이 없이는 토론에서 이기기는 어렵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독도가 우리 땅이라는 것을 강력히 주장하기 위해서는 역사를 알아야한다고 생각했다. 역사는 독도가 대한민국의 땅이라는 것의 강력하게 주장할 수 있는 매개체가 될 것이다. 요즘에 독도에 대한 인식이 높아지고, 관심이 많아졌지만 아직 많은 사람들이 독도에 대한 정보가 그렇게 많지 않기 때문에 독도에 대한 깊은 정보를 알고 그정보를 바탕으로 독도는 우리 땅이라는 것을 어딜 가든지 설명을 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런 이유로 나는 독도의 역사와 우리나라가 하고 있는 교육프로그램을 조사했다.
2. 본문 : 독도는 옛날부터 우리나라가 지배 해오던 땅이다. 최초로 독도를 차지한 것은 512년으로 삼국사기에 따르면 신라의 장군 이사부가 우산국을 정복했다고 나와 있다. 고려 시대에서도 독도에 대한 기록이 되어 있다. 고려사에 적혀있는데 “우산과 무릉에 본래에 두섬으로 서로 거리가 멀지 않아 바람이 불지 않고 날씨가 맑으면 바라볼 수 있었다.” 이글을 보면 무릉은 독도를 말한다. 또한, 조선에서도 1454년에 세종실록 지리지에 울릉도와 독도에 대한 내용으로 수록 되어있다. 그리고 1674년에 장한상이 울릉도를 순찰하여 독도의 위치를 숙종 에게 알렸고, 3년 뒤인 1697년에 2~3년 간격으로 독도를 지켰다. 이 내용은 숙종 실록에 명시가 되어있다. 1900년 고종이 칙령 제41를 발표하였는데 그 내용은 “울릉도를 울도 군으로 바꾸고, 그 관할 구역을 울릉도 전체와 죽도, 석도라 한다.”라는 내용이다. 여기서 석도는 독도를 의미하며 이는 독도를 국제적으로 우리나라 땅이라고 공식적으로 발표한 것이다. 그리고 세종 실록 지리지에 실린 내용으로, “강원도 울진현 동쪽에는 우산, 무릉 두 섬이 있다. 두 섬은 서로 멀리 떨어져 있지 않아 맑은 날에는 바라볼 수 있다. 신라 때에는 우산국이라 했다.” 라고 나와있다. 여기서의 무릉도 역시 독도를 뜻하고, 사묵사기의 기록과 일치하며, 신라 때에 우산국이라 했다는 말을 통해 독도가 신라 대부터 우리 땅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러한 긴 역사에 맞게 독도는 여러 이름이 붙여졌다. 먼저512년에 ‘위쪽의 높은 지대’를 의미 하는 ‘우산도’라 부렸으며, 조선 시대에는 ‘세 개의 봉우리로
이루어졌다고’하여 ‘삼봉도’라고 불리었으며, 1794년에는 독도에서 서식하던 강치의 수가 많다 해서 ‘가지도’라 불렸고, 1900년에는 고종의 ‘칙령 제41호’로 돌섬의 한자표기로 ‘석도’라 하였다. 우리가 말하는 독도는 1906년부터 불려졌다. 하지만 독도의 원래 이름은 독도가 아닌 ‘돌섬’이라고 한다. 이는 전라도 방언으로 돌 석(石)은 ‘독’으로 읽히며, 음운 변화로 독섬이 되었다가 한자표기로 독도로 바뀐 것이다. 독도의 고유 이름이 ‘돌섬’이라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우리나라를 지킨 위대한 분들이 많듯이 독도를 지키려고 노력하여 지키신 분들도 많다. 대표적인 예시는 안용복이다. 안용복은 36살 때 울릉도에 전복을 따러 갔다가 납치가 되지만, 거기서 끊임없이 울릉도와 독도가 우리 땅이라고 주장하여 그것을 증명하는 서계 까지 받고 풀려난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안용복의 도일이 이래의 공도 정책을 어긴 범경행위이며, 대마도가 아닌 호키주를 거쳐 막부와 접촉하고 정부 문서를 위조한 것은 외교적 범죄라는 주장이 나와 결국 안용복은 유배형이 처해진뒤 그의 행적은 알 수 없다고 한다. 이러한 점에서 민간인 중에서도 시대상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저항한 것이 위인인 듯 싶지만 한편으로는 정말 어처구나가 없게 죽을게 안타깝다.
또 다른 예시는 이규원이라는 사람이다. 이규원은 일본인들이 침입과 벌목을 하고 입표까지 해서 그것에 화가 난 나머지 일본 공사장에 항의하고, 일본 외무상에 항의 물서를 제출하고자 하였다. 이에 고종은 채택하여 그 후에 울릉도에 주민을 이주시키기로 하였다고 한다. 또한, 홍재현 일가는 독도를 지속적으로 지켜왔으며, 홍재현은 일본까지 직접 가서 일본인의 칩임을 문제삼고, 독도가 조선의 땅이라는 것을 확실히 밝혔다고 한다. 아들 홍종욱은 아버지 홍재현에 이어서 독도를 계속 지켜나갔고, 손자 홍순칠은 울릉도의 전역 군인들을 모아서‘독도 의용 수비대’를 조직하고, 경찰 서장의 지원하에 현재까지 외부의 침입을 막고 있다.
독도가 우리 땅임을 알리는 기념일도 있다. 바로 10월25일 독도의 날이다. 많은 사람들은 들어는 봤어도 구체적으로 알지는 못했을 것이다. 독도의 날은 2000년 8월에 독도수호대가 고종이 발표한 ‘칙령 제41조’의 반포일로 지정하였다. 독도 수호대는 독도의 날을 국가 기념일로 만들기 위해 1000만명의 서명운동을 벌였으며, 2004년 12월 10일에는 국회에 1차적으로 독도의 날을 국가 기념일로 제정해달라는 청원서를 제출하였고, 2008년 8월 14일에는 구회에 2차적으로 독도의 날을 국가 기념일로 제정해 달라는 청원서를 제출하였다. 그리고 2012년 10월 25일 에는 국회에 3차적으로 독도의 날을 국가 기념일로 제정해 달라는 청원서를 제출하였다. 그리고 드디어 우리나라는 2014년 10월 25일 독도의 날을 맞아 독도를 알리기 위해 전국의 유치원,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에서는 독도 특별수업이 진행되었다. 이번해의 도고의 날 특별수업은 학생들이 일본의 부당한 독도 영유권 주장에 대응 할 수 있도록 독도 주권 수호에 대한 인식을 높이기 위해 실시한다고 한다. 교육적인 면으로도 독도가 우리 땅임을 가르치는 정책이다. 교육청은 독도의 날 특별 수업을 위해 정규 수업시간이나 창의적 체험 활동 시간을 적절히 활용하여 학생들을 위한 독도에 관한 활동지와 읽기 자료 등을 각 학교에 배부하고 교육을 지시했다고 한다. 독도의 날 특별수업은 전국의 학교가 독도에 관한 수업지도 계획과 수업자료를 받아서 진행하게 된다고 한다.
3. 느낀 점/각어/다짐 : 나는 이 글을 작성 하면서 독도에 역사에 대하여 많은 것을 알게 되었다고 생각이든다. 특히 홍재현 일가와 이규원이라는 사람의 정보는 생소한정보였다. 많은 사람에 대하여 알지 못하였고 그저 조사를 해야 인터넷에 겨우 뜨는 정보였지만 그러한 정보를 알지도 못하고 독도를 막연히 우리 땅이라고 생각하는 우리나라가 한심하게 느껴졌다. 이렇게 조사하다 보니 차차 독도에 관한 정보들이 새록새록 기억이 났다는 느낌이 들었다. 예를 들어 안용복이라는 사람이 직접 일본까지 납치당해 갔지만 독도는 우리 땅이라고 주장을 하였지만 죄인으로 몰린 것이 기억에 났다. 내가 쓴글은 인터넷에 돌아다니는 정보를 적당히 모아서 썼지만 독도에 관한 조금의 지식이 추가된 것 같아 뿌듯하다. 하지만 내가 아직 모르는 독도에 관한 진실과 아직 밝혀진 진실이 많이 남아있을 것 같다. 그리고 독도를 사랑하고 걱정하는 사람들이 하나 둘 없어진다는 생각에 안타까운 마음이 든다. 나는 우리나라가 힘을 쓰고 있다고 생각을 하지만 작년 중학교에 적힌 독도에 관한글을 보면 정말 너무 조금 나와 있어서 이렇게 해도 될까하는 의문점이 들었다. 그래서 우리나라는 일본보다 더 수준 깊은 독도를 배워야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또한 나는 어떤 나뿐만 아니라 온국민이 독도에 데하여 더 깊이 생각하고 항상 독도를 기억하고, 독도를 위해 노력을 해야 한다고 느꼈다. 그래서 나는 내가 참여할 수 있는 활동들을 찾아서 될 수 있는한 많이 참가하여 독도를 절대 잊지 않게 열정적으로 참여할 것이다.
출처 : 네이버 백과사전, 독도연구소, 사이버 독도, 위키 백과